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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립스 곡선 —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딜레마

chrisps9 읽는 시간 약 7분

물가를 잡으려 하면 실업이 늘고, 실업을 줄이려 하면 물가가 뛰는 이유

4편에서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면 국민소득(그리고 고용)이 늘어난다는 걸 봤습니다. 그런데 이 부양책에는 대가가 없을까요? 그 대가가 바로 물가 상승이며, 이 상충관계를 처음 곡선으로 보여준 사람이 뉴질랜드 출신 경제학자 필립스입니다.

필립스의 원래 발견 — 임금과 실업의 관계

필립스는 1958년 1861~1957년 영국 데이터를 분석해 “명목임금상승률과 실업률 간에 역(-)의 상관관계”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. 실업률이 낮을 때는 기업들이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임금을 더 많이 올려야 했고, 실업률이 높을 때는 그럴 필요가 적었다는, 지극히 상식적인 노동시장 관찰이었습니다.

이후 새뮤얼슨과 솔로가 임금상승률 자리에 물가상승률(인플레이션율)을 넣어 재해석하면서, 오늘날 우리가 아는 “인플레이션-실업” 필립스곡선이 만들어졌습니다. 오늘날의 정의로는 “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 간에 상반관계(역의 상관관계)가 있음을 나타내는 곡선”이며, 그래프에서는 우하향하는 형태로 그려집니다.

infographic 05 phillips

정책적 함의 — 4편에서 본 부양책의 숨은 대가

4편에서 정부지출을 늘리거나 통화 공급을 확대하면 국민소득과 고용이 늘어난다고 했습니다. 필립스곡선 위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쓰면, 그 확장정책은 실업률은 낮추지만 그 대가로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습니다. IS-LM 모형에서 국민소득이 늘어난다는 결과가, 노동시장으로 눈을 옮기면 곧 실업률 하락과 물가 상승이라는 두 얼굴로 나타나는 셈입니다.

구분단기 필립스곡선장기 필립스곡선
형태우하향자연실업률에서 수직
전제기대 인플레이션이 즉시 조정되지 않음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와 일치
정책 함의실업↓·물가↑ 상충관계 존재상충관계 없음, 물가만 변화

스태그플레이션 — 이론이 무너진 순간

그런데 197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며 “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” 현상이 나타났습니다.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치솟는 이 상황은, “실업이 늘면 물가는 내려간다”는 단순한 필립스곡선의 상충관계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. 이 모순이 필립스곡선 이론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게 됩니다.

공급 충격 — 곡선 자체가 이동하는 경우

확장적 재정·통화정책은 필립스곡선 위에서 점이 움직이는 수요 측 이동이지만, 오일쇼크는 성격이 다릅니다.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 기업의 생산비용이 올라 같은 실업률에서도 물가상승률 자체가 높아지는데, 이는 필립스곡선 자체가 오른쪽 위로 밀려나는 공급 충격(supply shock)입니다. 곡선 위의 이동이라면 실업과 물가 중 하나를 감수하는 선택의 문제지만, 곡선 자체가 밀려나면 실업과 물가가 동시에 나빠지는 상황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. 이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이 정책 당국을 유독 곤혹스럽게 만든 이유입니다.

자연실업률 가설 — 프리드먼과 펠프스의 반론

프리드먼과 펠프스는 각각 1968년과 1967년, 서로 독립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 개념을 더해 이 모순을 풀었습니다. 논리는 이렇습니다. 정부가 확장정책으로 실업률을 일시적으로 낮출 수는 있지만,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물가상승을 인지하고 임금·가격 결정에 반영하면, 결국 실제 실업률은 자연실업률 수준으로 돌아오고 인플레이션만 높아진 채 남습니다.

그 결과 “장기 필립스곡선에서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사이의 상충관계가 존재하지 않”게 되고, 장기 필립스곡선은 자연실업률(NAIRU, 물가안정실업률) 지점에서 수직인 선으로 그려집니다.

디스인플레이션의 대가 — 희생비율

반대로 이미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어떨까요? 자연실업률 가설을 뒤집으면, 물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위로 끌어올려야 합니다. 이때 인플레이션율 1%포인트를 낮추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국민소득(또는 실업) 손실의 크기를 희생비율(sacrifice ratio)이라 부릅니다. 기대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빠르고 신뢰성 있게 낮아지느냐에 따라 이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, 중앙은행의 신뢰도가 높을수록 같은 물가 안정을 더 적은 실업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통화정책 신뢰성 논의의 핵심입니다.

숫자로 확인하는 “공짜 점심은 없다”

이 관계를 아주 단순화한 식으로 쓰면 π = πᵉ − β(u − uₙ)입니다. β=1, 자연실업률 uₙ=4%, 기대 인플레이션 πᵉ=2%인 경제를 가정해봅시다. 평소에는 u=4%이므로 π = 2 − 1×(4−4) = 2%로 유지됩니다.

정부가 경기를 부양해 실업률을 3%까지 낮췄다고 해보면, π = 2 − 1×(3−4) = 3%로 인플레이션이 오릅니다. 하지만 이 3% 물가상승을 사람들이 인지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πᵉ=3%로 조정하면, 실업률이 다시 자연실업률 4%로 돌아왔을 때 π = 3 − 1×(4−4) = 3%로, 실업률 개선 효과는 사라지고 인플레이션만 2%에서 3%로 한 단계 올라선 채 남습니다.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밑으로 계속 묶어두려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끝없이 갱신되어야 하므로, 이를 가속물가상승가설(accelerationist hypothesis)이라고도 부릅니다.

그래서 중앙은행은 ‘기대 관리’에 집착한다: 이 이론의 실무적 결론은 “기대 인플레이션 자체를 낮게 고정시키는 것”이 가장 값싼 물가 관리법이라는 것입니다. 실제로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해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운영하고 있으며, 2000년대 초반 3%였던 목표치는 이후 2%로 낮춰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. 목표를 명확히 밝히고 지켜온 실적을 쌓을수록, 사람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그 목표 근처에 낮게 고정되어 정책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는 논리입니다.

정리하며 확인할 것

  • 필립스곡선은 원래 임금상승률과 실업률의 역상관관계였고, 이후 물가상승률 버전으로 재해석됐다
  • 단기에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에 상충관계가 있지만, 장기 필립스곡선은 자연실업률에서 수직이다
  •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(고실업+고물가 동시 발생)이 단순 상충관계 이론의 한계를 드러냈다
  • 기대 인플레이션이 반영되면 실업률은 자연실업률로 복귀하고 물가만 높아지므로, 정책은 ‘기대 관리’에 집중한다
  • 수요 측 정책은 곡선 위의 이동이지만, 오일쇼크 같은 공급 충격은 곡선 자체를 밀어내 실업·물가가 동시에 나빠진다
  •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드는 실업 비용(희생비율)은 중앙은행의 신뢰도가 높을수록 작아진다

참고자료: 필립스 곡선 – 위키백과, [국가공인 경제이해력 검증시험 맛보기] 필립스곡선 – 생글생글(한국경제), 물가안정목표, 왜 2%일까? – 한국경제

이 글은 거시경제학 교육 목적의 일반적인 설명 자료이며, 특정 시점의 통계치는 발표 기관의 최신 자료를 기준으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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